혼자 달리다 더 의미있는 것은 없을까 생각하던 중, 페친이 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애니멀 런’이라는 이 서비스는 매월 멸종위기의 동물을 하나 정하고 비대면 달리기를 한 후에 참가비의 일부를 이 동물을 살리기 위해 기부하는 소셜 임팩트 서비스였다.
동물도 달리기도 좋아하는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11월의 동물은 코뿔소였다.
9킬로미터를 달리면 되는 간단한 길이었지만, 번호표를 붙이고 달리니 더 의미가 느껴졌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하던 코스를, 원래 하던 거리로, 원래 하던 방식으로 하니 번호표 붙인 것을 제외하고는 대회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전이 연습처럼 느껴지니 너무 편했다.
브라운백 커피에서는 모든 미팅을 기록한다.
면접, 스프린트(일종의 주간 회의), OKR에 이르기까지 기록은 그냥 디폴트였다.
그러던 어느날 외부 미팅을 할 때 한 인턴이 대동했다.
입사한지 몇 주되지 않은 친구였는데 첫 직장의 설레임, 한참 나이차도 거리감도 큰 대표자와 파트너를 보는 긴장감이 함께 느껴졌다.
그런데 미팅 내내 말 한 마디 없던 그의 미팅록은 여느 기존 멤버들과 비슷한게 아닌가.
수년간의 미팅록은 템플릿으로, 누구나 기록하는 문화는 신입에게도 쉽게 전수되었다.
그동안의 과정이 연습으로 쌓이니 새내기도 쉽게 적응할만큼 실전이 할만해진 것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오랜시간 익숙해진 나는 텍스트가 지식의 습득 루트로 좋다.
반면 유튜브 세대인 MZ은 비교적 영상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은 현장감이 살아있는 강의를 훨씬 좋아한다.
이렇게 지식을 습득하는 고차원의 활동도 익숙함의 영향아래 있다.
우리의 일상은 이처럼 의미있는 이벤트가 생겼을때 얼마나 쉽게 그 일을 맞이 할 수 있는지를 이미 정해두게 된다.
일상을 의미있게 채울수록, 중요한일이 생겼을때 쉬워지고 편해진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채우며 어떤 굴곡을 쉽게 만들고 있는가.
연습은 실전으로 이어진다. 삶에서 사각지대는 없다.
나의 실전은 어떤 연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연습으로 미래의 실전을 대비하고 있는가.
공짜는 없다. 나는 어떤 것을 먼저 지불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