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수많은 말과 생각이 타임라인을, 앱의 초기화면을 점령하고 견해를 강요한다.
삶에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기왕 마음먹은것 앞으로는 가급적 좋은 이야기, 선한 마음이 좀 더 많이 보이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사건사고가 범람하고, 편향된 마음과 이야기가 곳곳에 쇄도한다.
40대 직전(새 정부의 법안이 잘 통과된다면 30대 중반?)부터 명상과 요가를 접한 나는 이 놀라운 습관을 구시대의 몸과 마음에 반영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실시간으로 사건 사고가 나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현실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하는 조언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다.
앉아서 명상을 하려고 하면 1분도 너무나 길었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어제 과식한 것, 필요도 없는 괜한 이야기를 늘어놓은것, 저녁을 함께한 멋있는 분들에 비해 초라한 내 모습이 송곳처럼 찔러왔고, 무심지경이란 정말 불가능 그 자체였다.
요가는 어떠한가. 인간 통나무도 아닌 그냥 통나무인 내 몸은 평생 온몸이 굳어서 기초 자세 하나도 허락하지 않았다. 허리 숙이는 자세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은 허리를 숙여보고 나서야 알았다. (수년간의 노력끝에 인간 통나무 정도로 진화한 지금도 아직 내 허리는 완전히 반으로 접히지는 않는다.)
업무를 하는데도 반복된 실수가 나타나면 정말 참기 어려웠다. 좋은 사람들과 나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보였고, 계속된 도돌이표가 브라운백을 점령하는 것만 같은 답답한 기분이 매일같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무겁고 힘들기만했다.
다시 태어나고 3년이 된 지금쯤 돌이켜보니 이제야 알게되었다.
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멀리서 보면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어딘가에서 계속 보내고 있는 신호가 전달되어 드러나는 것과 같았다.
별이 빛나지 않는다면 이미 과거에 그 별의 수명은 다한것처럼, 삶에서 변화란 빛을 밝히려면 그 전에 뭔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어야했다.
내 마음속에 좋은 생각을 채우고 싶다고 마음먹었다면, 그것이 내일 당장 완벽히 채워져서 다른 마음이 없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좋은 이야기를 듣자 타던 말에서 내려 귀를 씻는 선비(요순시대의 허유)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오래되고 묵은 기운을 내보내고 새롭고 맑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장치를 설계해야한다. 명상, 요가, 샤워, 산책이 아주 좋다고 알려져 있다.
평소 하지도 않던 운동을 갑자기 며칠 열심히 한다고 건강한 몸이 될것이라고 기대하는것은 사기와 같다. 최근 보고된 미국 아칸소대의 연구에 따르면 생쥐를 대상으로 2개월동안 운동을 꾸준히 시켰더니 약 10%의 수명(8주)이 후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매일 운동을 했지만 신체의 변화를 느낀것은 6개월이 지나서였다. 그 전에 그만뒀다면 나는 여전히 통나무였을 것이다.
반복된 실수를 바로잡는 방법은 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더 본질적인 원인과 해결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상황에 매몰되기보다는 한 발짝 벗어나서 바라보는 것을 의식적으로 훈련해야만 했다. 그게 마음챙김(Mindfulness)의 원리와 통한다는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사내에서 진행하는 캔미팅이나 회고는 그런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가정용 정수기의 구조에서 하나의 필터로 한 번에 정화되는 구조를 만들면 참 좋지만, 불행히도 다중 필터에 비해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고, 수명도 짧다.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올인원 솔루션을 찾을 것이 아니라, 다중 필터를 입혀야 한다. 다행히 우리의 마음은 아주 많은 필터를 설치하더라도 충분할 만큼 넓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와 함께 새로운 필터를 입히며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매일 아침 다시 한 번 내 삶에 기회를 줄 수 있는 다중 필터를 입혀보자. 명상도 좋고, 물 한 잔, 스트레칭 5분, 책 한 소절이나 영상 한 클립도 좋다. 그런 활동이 낮에도, 저녁에도, 자기 전에도 이어지면 더 좋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