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를 만드는 비즈니스
그런데 오늘 매운 라면이 출시되면 내일은 더 매운 라면이 경쟁사에서 바로 출시되는 치열한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높은 가치를 제품과 서비스에 담을 수 있을까?
아이폰은 그 자체로도 멋진 기기였지만, 본격 J커브를 그린것은 앱스토어의 역할이 컸다.
앱스토어의 탄생은 수많은 개발자들이 아이폰을 캔버스로 다양한 앱으로 상상력을 펼치는 배경이 되었고, 아이폰은 진정한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일반적인 TV는 단순히 방송사의 방송을 투영시켜주는 역할을 했지만, 스마트 TV는 다양한 솔루션을 담을 수 있는 역할을 하게되었고, TV 제조사들은 이제 스마트 모니터로 박리다매로 전락하던 TV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구글은 야후나 네이버처럼 모든것을 담은 포탈을 지향하기보다는 검색 결과로 빠르게 인도하는 검색엔진의 길을 선택했고, 가장 많은 고객이 모여 구글링이란 말까지 만들게 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검색 결과 화면 상단에 노출하고 싶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설계했다. 구글 애드워즈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디지털 광고 사업 모델이 되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회사들은 눈에 띄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1. 고객 가치를 충분히 채우는 제품이 존재한다.
2. 자유도 높은 세계관과 통제력을 함께 보유한다.
3. 그림과 캔버스를 동시에 추구하지 않는다.
브라운백이 만드는 커피 비즈니스 혁신
브라운백의 초창기에 했던 중요한 선택들도 위 1/2/3과 다음처럼 연결되었다.
우리는 커피 산업에 집중했다. 커피 원두를 어떻게 디지털로 제조할지, 어떻게 모든 고객의 판매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지, 그것을 다시 어떻게 대한민국의 커피 취향 맵으로 그려서 구분하고 추정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우리는 대부분의 기존 커피 플레이어와 달리 온라인에서 판매했으므로 누가 어떤 빈도와 양으로 어떤 지역에서 어떤 커피를 선호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고, 원두 제조의 레시피를 처음부터 디지털로 만들어 어떤 열원으로 얼마나 가열하면 어떤 뉘앙스의 커피가 나오는지 수집했다. 고객이 만족하지 않는 맛의 커피는 조건없이 환불하고, 치열하게 연구했다. 데이터가 축적되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취향의 커피를 선호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젠 그런 원두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의 맛의 결정인자는 원두에서 80-90% 가량 결정된다는 연구결과를 믿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중에 하게된 오피스 커피 구독 사업 고객 설문에서 블리스 선택 이유 1번이 ‘카페와 같은 맛’이 아니었을 것이고, 우리 서비스의 리텐션은 좀 더 낮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객이 선택하는 원두를 남기고, 그렇지 않은 원두는 내렸다. 업계 평균의 10배 가까운 속도로 커피를 개발하는 일을 5년 이상 계속했고, 꼬꼬마 스타트업인 우리의 한계를 자각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제조에 집중했다. 엄청난 양이 부담스러웠지만 수십만 배치의 원두를 빠짐없이 전수조사하며 QC에 신경을 썼다. 이제 다양한 협력사들과 함께하며 생태계를 만드는 시기가 되자 이런 우리의 노력은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받는 단골 질문은 ‘브라운백 프랜차이즈 매장은 언제 여나요?’ 였다. 우리는 이 부분이 우리 사업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국의 독립 카페가 원두 사업의 주요 고객이었는데 매장을 연다는 것은 투명하지 않게 보였다. 우리는 프랜차이즈 회사가 아닌 전국의 10만 카페의 후원자가 되고 싶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역시 오피스 커피 구독 서비스를 하는데 뜻밖의 도움이 되었다. 프랜차이즈 회사는 각 매장의 영향을 고려해서 오피스 시장에 진출하기 쉽지 않았다. 그들은 가맹점주님들 덕분에 성장하는 사업이므로 오피스 고객만을 위한 서비스를 빠르게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커피 전문성보다는 매장에 관심이 많았다.
운 좋게 거대하고 오래된 산업에 몸담은 덕분에 브라운백은 나름의 속도로 수행하면서도 산업 전체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혁신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림이 아니라 캔버스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 전통 산업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디지털 침투율이 0에 가까운 산업에서는 언제 전환기가 올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산업의 혁신가들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노키아 시대, 휴대폰은 이제 포화시장이라고 했을때 애플은 모바일 세상을 열었다.
야후와 이베이가 포털과 커머스로 거인이라던 그 때, 구글과 아마존은 디지털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넷플릭스는 스스로의 DVD 배송 모델을 부숴가며 컨텐츠를 서비스화했다. 먹는 것과 입는 것부터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이르기까지, 농업이나 어업 등의 1차 산업부터 매장운영과 같은 3차 산업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아날로그로 수행하던 모든 산업에 기회는 넘칠 정도로 많다.
그리고 그 산업들은 디지털 혁신가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