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비스화(XaaS)의 특징
원시시대에 직접 사냥부터 원재료 전처리, 조리까지 직접하던, 과일을 채집하고 몸으로 실험하며 재료 수준에서 먹기도 급급했던 인류의 식사는 이제 레스토랑을 넘어 배달과 밀키트 등으로 많은 부분이 서비스화되었다.
소프트웨어의 서비스화(SaaS : Software as a Service)가 촉발시킨 서비스화는 이제 생활 곳곳으로 침투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음식을 직접 조리하기 보다는 배달과 반조리를 쓰며 소비자는 가격을 지불하고, 기업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거 길에서 자전거를 수리하던 풍경은 일상적이었지만, 지금은 자전거를 직접 수리하지 않는다. 과거 빨래는 집안일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세탁 스타트업, 코인워시, 건조기 등이 해당하는 역할을 나누어 대신한다. 이러한 각 산업의 서비스화를 XaaS(Everything as a Service)라고 하기도 한다.
구독 모델로도 불리는 이러한 서비스화에 성공하는 기업은 미국 통계 기준으로 일반 기업보다 평균 3배 이상 빠르게 성장한다. 서비스화는 단건의 거래가 아니므로 거래가 연속성이 있어 불확실성이 적다. 불경기에 강하고, 교차판매가 용이하며, 고객에 대한 데이터 접근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화는 복잡도 높은 오퍼레이션이 필연적이고, 디지털로 수행하지 못하면 그 복잡한 일을 사람이 직접 수행하게 되므로 수많은 O2O 사업의 어려움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서비스화 과정에서 만나는 고객 가치가 기대수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냉정한 고객은 바로 발길을 돌린다. 정수기 필터를 갈아주며 성공신화를 쌓았던 렌탈 회사는 이제 서비스 가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필터를 온라인에서 주문해서 간단히 교체하는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서비스화의 요소가 복잡한것을 줄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단순하기만 하다면 소비자는 뷔페나 샤브샤브처럼 서비스화를 선택하기보다 직접 조리하고 먹기도 한다.
2. 서비스화의 지향점
서비스화는 편리함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의 본능에 가깝다. 불을 그때그때 붙이지 않고 불씨를 남기던 인류는 화로와 가스레인지로 언제든 필요할때 불씨를 보유하고 피웠고, 이제는 인덕션으로 불씨를 디지털화하게 되었다.
전자파가 나온다고 스마트폰의 효용을 거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늘상 쓰는 스마트폰은 어느덧 그것을 뒷받침하는 생태계, 요금제, 환경의 구축으로 서비스화 되었다. 애플은 이제 아이폰의 성장이 성숙했다고 판단했는지 최근 디바이스의 구독화를 검토하고 있다(DaaS : Device as a Service). 편리함은 이렇게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다.
3. 브라운백을 통해 본 서비스화 사례
브라운백은 원두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환경을 디지털화했기때문에 어떤 고객이 어디서 원두를 사고 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2017-18년 즈음이었을 어느날,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커피 쇼핑몰 1위를 하며 카페를 대상으로 원두를 판매하던 우리는 예상치 못하던 것을 발견했다. 카페만큼이나 원두를 소비하는 집단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회사였다.
절대 숫자는 아직 적은 편이었지만 회사는 인스턴트에서 원두커피로 전환하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 좀 조사해보니 국내 직장인의 80%는 이미 카페 수준의 커피를 희망하는 반면, 국내 회사의 80%는 인스턴트 커피(또는 그 이하의 원두커피)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장인들은 회사의 무료 커피를 외면하고 밖에서 직접 사먹고 있었다. 총무과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바리스타를 회사가 쉬 채용할 수는 없었고, 아메리카노의 맛은 국내외 논문에 따르면 80~90% 가량이 원두에서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다수였기 때문에 회사가 뭘 주도적으로 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그 지점을 파고들어 우리가 그동안 쌓아왔던 원두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내 직장인의 입맛에 맞는 원두를 설계하고, 국내 사무실 환경에 맞는 커피 머신을 선정해 커피 구독 서비스를 만들어 커피를 서비스화하기 시작했다(CaaS : Coffee as a Service).
약 1년간 베타 서비스를 운영하며 산업과 고객, 제품과 서비스를 관찰하고 다듬었다. 정말 엄청나게 복잡한 일이었다. B2B의 의사결정구조는 회사마다 달랐고, 고객의 설치환경과 입맛은 늘 새로웠다. 결제는 각 회사의 세무와 현금흐름에 따라 다양해서 구조화란 불가능하게 보였고, 신선도가 중요한 원두는 고객이 떨어져서도, 많이 남아서도 안됐다.
제품과 시장에 대한 궁합(PMF : Product Market Fit)을 확신하고 정식 론칭한 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B2B 거래를 서비스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배제하며 디지털 마케팅으로 많은 양의 실험을 매주 돌려가며 고객의 유입과 무료로 제공되는 2주간의 오피스 커피 구독 체험을 다듬어나갔지만, 최적점을 찾을수 있을지 막연하기도 했다. 성장 속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객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조직의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계속 엎고 다듬었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해올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누구나 사무실에서 편리하게 카페 수준의 커피를 먹게 하겠다’는 마음의 동료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스폰지처럼 새로운것을 익히고, 문제에 맞서며, 어려움을 공유했다. 오피스 커피 구독 서비스 이름을 ‘블리스 BLISS : 영어로 Perfect Happiness란 뜻’로 정하자 리더인 구인모님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직장에 완벽한 행복을 채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스스로의 역할을 시대의 파도와 고객의 가치에 맞추는 진화형 리더이다.
4. 브라운백이 서비스화를 통해 얻은 성과
엄청난 부하의 업무와 난제속에서 그렇게 커피를 서비스화해나갔다. 편리한 커피의 구독 서비스의 제공이 일단 이루어지자 고객의 반응은 놀라웠다.
B2B 구독의 세계적인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지표인 1% 미만의 해지율(99% 이상의 리텐션)과 3년간 440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우리가 전하는 행복에 반응해주었다. 2주간 무료체험하는 고객은 90% 내외가 본 계약을 진행하며 우리가 쌓은 한국의 커피 데이터에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이렇게 우리가 마주한 서비스화의 현실은 놀라웠다.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했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고객이 느끼는 결핍과 불편함을 잘 채울수록 고성장은 저절로 따라왔다.
어떤 산업이냐에 따라 매우 복잡한 변수가 존재할 수 있지만, 나는 머지 않아 모든 것이 서비스화 되는 XaaS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어렵고, 복잡하고, 번거로운것은 줄이고 쉽고 매끄러운 편리함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순간을 채우길 바란다.
그리고 브라운백이 기술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서 그런 부분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 모든 산업이 지금 서비스화의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산업의 서비스화 가능성을 검토할때 하는 주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이 산업은 현재 어떤 서비스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 고객들은 어떤 가치를 직접 수행하거나 부족해하고 있는가?
- 그것을 서비스화하면 기업은 어떤 일을 처리해야하는가?
- 그 경우 그 과업을 디지털화 할 수 있는가?
- 그리고 고객은 그 결과물을 진정으로 원하며 가격을 지불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