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
그런데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사업모델을 정하는 단계에서 주어진다. 그것은 메가트렌드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불의 도입과 산업혁명, 인터넷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경우 메가트렌드는 기술의 혁신으로 인해 이루어지지만, 신용거래의 발생(후에 역외 거래, 금융 파생 모델로 발전), 할부판매(후에 렌탈과 구독으로 발전)처럼 기존 관행을 바꾸는 새로운 사업 형태의 도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서브프라임이나 루나사태처럼 극단적 파멸로 가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분들은 대부분 처음 사업을 시작할때의 나처럼 ‘모든 가설이 성공적으로 들어맞는 꿈’에 취해있다. 그 꿈은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목표를 향해 질주하면서 주변을 못보게 되어 정신차리고 보면 실패의 늪에 빠지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Pet.com, 위워크, 무비패스 등 엄청난 투자와 인재러시에도 불구하고 망한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는 산업보다는 사업 모델 단계에서 만들어진 패착에 있다고 본다. 그들의 산업은 나름 좋았다.
어떤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가
처음에 구현할 수 있었던 브라운백의 사업 모델은 원두 제조라는 장인의 영역을 디지털화하는 것이었다. 대량 생산할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했고, 온라인으로 판매되어야 했으며, 그 결과는 숫자로 치환될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측정과 개선이 가능했고, 취향을 손에 잡히는 영역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단순한 제조와 판매의 디지털화로는 시장 성장률의 일부만 향유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의 쇼핑몰은 회원가입부터 상세페이지까지 카피의 대상이 되었고, 어느날 새로운 곳이 등장했다고 해서 구매하려고 해보니 마지막 회원가입 화면 확인창에서 ‘브라운백 커피에 가입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가 나와서 웃었던 경험도 있다.
그런 일이 쌓이자 커머스의 미래를 다시보게 되었다.
고객이 모든 제품의 가격을 쉽게 비교할수 있고 내용을 확인할수 있는 시대, 누구나 제품의 설명과 내용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시대에서 커머스는 결국 장기로 갈수록 간신히 이익을 남기는, 온라인 다이소에 수렴하게 되는 모델이라고 판단했다.
AWS없는 아마존이, 쿠팡이 몇십조 이상의 매출로도 적자가 되는 걸 보면, 그때의 판단은 크게 잘못되지 않은것 같고, 지금 나는 한발 더 나아가 비슷한 상품의 틈새 시장 개척과 반짝 광고, 단순 유통에 집중한 사업 모델의 수명은 매우 짧다고 생각한다. (트래픽을 모아서 그 다음에 현금을 만들겠다고 하는 단순 플랫폼 모델도 엄청나게 어려워졌다고 본다.)
어떤 사업 모델이 좋은 모델인가
1) 고객 유지율 Retention : 고객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가능하다. 우리에게서만 살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애플, 구글, 나이키, 에르메스)를 만드는 것 또는 우리에게 계속 있도록 하는 거래 방식(SKT, 코웨이, 넷플릭스)이 그것이다. 나이키가 아마존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 처럼, 그리고 COVID 시대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고객은 저절로 다시 찾는다.
나이키 러닝 – 애플워치 나이키 – 나이키 요가 라인 등 나이키 세계관의 확장은 아디다스와 리복 등의 과거 경쟁자를 압도했지만, 룰루레몬은 그사이에 또다른 팬덤을 구축하며 그들에게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고 있다.
SKT와 코웨이(정수기 한정)의 연간 고객 유지율은 88%에 육박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업계 1위의 위치에서 고객이 필수재처럼 여기고 그 서비스의 가치를 전부 알고 선택하는 상황에서 구성과 관리와 계약의 힘으로 해지하지 않는다.
두 요소는 동시에 준비되면 더 강력하다. 유튜브 뮤직은 그 어려운 스트리밍 시장에서 어느새 국내 2위가 되었다. 한편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유튜브 프리미엄과의 연계는 다른 서비스도 통신사(FLO-SKT), 슈퍼앱(카카오-멜론)처럼 연계로 대항하고 있다. 유튜브 뮤직은 이에 더해 방대한 콘텐츠, 편리한 UX,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시장을 야금야금 먹고 있다. 전형적인 리텐션 기반 시장 장악의 사례이다.
2) 높은 공헌이익 : 부가가치가 높아야 한다.
최근 10년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젊은 부자(이른바 영앤리치 Young&Rich)를 양성한 영역은 테크 스타트업이 아니라 코인과 뷰티였다. 그리고 그 두 사업은 매우 낮은 원가율(코인은 0에 수렴, 뷰티는 평균 15%)을 자랑한다.
고객에게 아무리 가치를 정당화하는 프로모션 활동을 하더라도 이것을 소화할 수 있는 마진룸이 없다면, 단시간에 타겟 고객에게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리브영의 입점 수수료는 30~45%이고, 홈쇼핑, 백화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자리의 영업이익도 준비되지 않은 모델로 고객을 획득하려면 투자 유치 등의 방법밖에는 없지만,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므로 대부분의 플랫폼이 만나는 현실처럼 CAC-LTV 모델을 잡아가기도 전에 고갈이 연속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내부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좋은 기업은 좋은 멤버가 시간을 갖고 만들어간다. 기업 내부적으로 아직 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직원들의 턴오버가 높더라도 이것을 버틸 만한 공헌이익이나 자본이 있다면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하지는 않으므로 각 기업만의 문화를 허용된 시간내에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창업자부터 전 직원이 번아웃을 만나게 되곤 한다. (문화는 전략을 압도한다는 드러커의 금언도 잊지 말자.) 그런데 그럴만한 사업모델이 없다면 애초에 버틸수도 없다.
다시 말해, 외부 고객과 내부 고객 모두에게 좋은 사업모델은 필수적이다.
3) 두터운 해자 : 경쟁자가 따라하기 어려워야 한다.
세일즈포스와 서비스나우, 어도비 등이 성공을 보여주며 SaaS가 범람하는 시대이지만, 이제는 그것도 극히 일부만 성공한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누구나 클릭 몇 번이면 코드를 확인할 수 있고, 이미지와 영상을 복사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 테크로는 경쟁자를 방어하기 어려운 시점이 된 것이다. 토스-카카오뱅크-네이버페이와 기존 뱅킹 서비스도 몇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시간이 갈수록 유사해지고 있다.
최근 보도된 스푼라디오의 인터뷰를 보면 클럽하우스로 음성 소셜 서비스가 각광을 받자 카카오 음 등 유사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시장에 넘쳐났고, 오히려 시장이 혼잡해지기만 했다고 한다. 그 많던 투자 문의가 싹 사라지고 다음 라운드 투자 유치에도 실패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허들이 낮은 사업 모델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유저를 빠르게 늘려서 네트워크 효과로 해자를 만들려면 정말 엄청난 속도로 유저를 획득해야 한다. 불행히도 지금 그런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투자자를 설득하기도 고객을 유치하기도 어렵고 그 사이 기존 플랫폼이 쉽게 따라하게 된다. 선점효과는 이렇게 무섭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경쟁자는 따라하기 어렵고 우리는 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것인가.
우리는 복합 서비스를 구성해야 한다. 아마존이 무섭고, 쿠팡-컬리가 어려운 이유는 AWS 때문이다. 애플이 위대하고, 샤오미-삼성이 어려운 이유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통합 경험 때문이다. 테슬라가 압도하고 포르쉐 도요타가 방황하는 이유는 운전이 아니라 생태계 때문이다.
‘당신은 전략가입니까’에서 신시아 몽고메리는 복잡한 가치창출시스템이 진정한 해자를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구찌 사례는 전통 브랜드가 이를 기반으로 여러 차례 변신하는 것을 보여주므로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브라운백의 진화
커머스에서 구독 모델로
브라운백의 사업은 이런 고통스런 과정의 고민을 통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왔다.
제조와 커머스에 집중하던 시절, 우리는 시장 성장률 + 작은 기업의 착시효과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 10%대의 영업이익률은 시장에 비해 높았지만, 미래를 담보하긴 어려웠다.
구독 모델을 만들며 어느정도 내가 원하는 사업 모델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99%의 연 ‘고객 유지율’, 40-60%에 육박하는 ‘공헌이익률’, 디지털과 식품, 방문 관리 서비스, B2B 거래를 융합한 구독 서비스의 운영은 극악의 난이도를 보였지만 동종업계 경쟁사 평균 40% 내외의 연 고객 유지율과 대조되며 그렇게 원하던 ‘두터운 해자’를 형성해갔다.
커피 경험 재발명을 위한 도전
이 과정에서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매일 느끼고 체감하게 되었다. 이 험난한 길을 함께 해주는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진작 다른 길로 갔을지도 모른다. 집단의 변화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신경쓸 일 없는 원부재료, 유통기한, 물류, 패키징, 기계공학, 전자공학도 파고들어야 하고, 하드웨어 회사들이 마주할 일 없는 SaaS와 클라우드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테크 회사 입장에서는 개발보다는 오히려 소비의 대상인 커피 산업의 난제들도 해결해야한다. 구독 모델의 복잡한 운영과 현금 관리도 극복해야 한다. 매일 사건 사고가 날 수 있고, 계획과 현실은 항상 생각과 차이가 있다.
하나를 잘 하기도 어려운데, 여러 가지를 모아서 가치 창출 시스템을 형성하는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를 만나는 사건사고의 범위와 종류를 볼 때마다 느낀다.
하지만 나는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벤처 Venture’의 길이기 때문이다. 남극에 도전한 섀클턴처럼, 하늘을 개척한 라이트 형제처럼, 우리는 우주에 빛을 더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벤처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런 벤처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은 다행히 가능한 일이다.
고객을 떠나지 않게 하는 사업, 높은 이익을 고객이 기꺼이 허락하게 하는 사업, 경쟁자가 따라하기 어려운 사업이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고속성장의 미래를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