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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외부에 있다.

서울대공원에는 코뿔소가 있다. 어느날 아이들을 데리고 코뿔소 축사 앞에서 큰 덩치와 뿔의 위용을 실물로 보여줬는데 전혀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잠시후 매점앞에서 밥먹다 말고 달려나간 녀석들을 쫓아가보니 코뿔소 동상을 만지고 구경하며 환호하는 것이 아닌가. 6세 3세인 그들에게는 아빠가 낑낑거리며 목마태워서 자랑스럽게 보여준, 멀리서 살아움직이는 실제 코뿔소가 아니라 스스로 만질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눈높이의 동상 코뿔소가 진짜였다.

우리는 얼마나 공들였는지, 우리 생각에 얼마나 중요한것을 제공하는지로 결과를 기대하곤 하지만 결과는 우리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 얼마나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는지가 식당 고객의 만족도를 결정한다. 그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해 몇 명이 몇 시간 일했는지, 어떤 고춧가루를 어떻게 공수했는지는 정성을 녹인 스토리로 표현될수도 있지만 고객에게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결과는 외부에 있다. 내가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메시지의 내용을 결정한다. 뉴욕에서 한국어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파급력도 낮지만, 아무리 크게 떠들어도 미국인에게는 그냥 알아듣지 못할 말일 뿐이다. 인생을 담아 사업을 준비한 주인장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고객이 기업의 존속여부를 결정한다. 팀의 책임을 한몸에 짊어진 리더가 아니라 각자의 실무를 수행하는 동료가 그 조직의 방향과 시도가 일치하는지를 결정한다.

이런 외부 시선의 사고는 사실 쉽지 않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므로 여자친구에게 신박한 IT 가전을 생일선물했다가 등짝을 맞고, 금요일 17시에 동료들에게 이유없는 헌신을 요청했다가는 본의아닌 꼰대가 되기 쉽다. 다음처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반복하는 것은 이런 외부 중심 사고를 갖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 나의 매운맛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라떼는~’ 이야기는 그 당시 타이밍의 사례일 뿐이다. 환경이 다르고 기술이 다르고 경쟁이 다른 지금, 그 라떼는 나만 마시는게 좋다. 정말 중요한 목표라면 공감을 충분히 갖추고 도움과 몰입을 요청해야한다. 상대방도 공감할때 같은 출발점에 설 수 있다.
2. 나의 희망사항을 상대방에게 모두 넘기지 않는다.
숨은 목표나 높은 지향점은 정교하게 설계해두고 그것을 억지로 요청하지 않는다. 세계인을 감동시킨 ‘마지막 강의’의 주인공인 랜디 포시는 죽음을 앞두고 남긴 자신의 삶과 메시지를 ‘수강생에게 전달한다’는 1차 목표외에도 ‘아빠가 자신의 아이들을 향해 남기는 마지막 이야기’라는 2차 목표를 하나의 강의에 함께 담는다.아이들은 지금 그것을 주입받는게 아니라 나중에 스스로 느끼게 된다.
3. 나의 실망이나 탄식은 지금 표현하지 않는다.
성과가 저조하고, 상대방의 태도가 내 마음같지 않을때, 그것을 그 자리에서 표현하기 보다는 의도적인 쉼표를 가진다. 기다림의 미학은 생각보다 더 큰 기적을 가져다 준다. 대부분의 사건은 몇 주 지나면 잊혀지고, 그렇게 여유를 제공하면 서로에게 좋은 관계가 축적된다. 필요한것은 나의 작은 인내일 뿐이다.

브라운백에서는 작년대비 인원이 2배 늘었다. 우리는 이때 새로들어오시는 분들께 7년 묵은 회사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않는다. 새 동료들과 함께 더 건강한 브라운백을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한다. 나는 동료에게 업무를 전하면서 정해진 목표를 꽂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은 넘길수 있지만, 내일을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속이 타고 위기감이 고조되지만, 기다려주고 새로운 기회를 주며 성장을 돕는다. 그리고 실패를 그 자리에서 확정하지 않는다. 며칠 지나면 그것은 배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만 살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 스스로만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으면, 더 큰 의미와 연결이 이루어진다. 혼자 외치는 메아리도 소리를 반사시켜주는 대상이 있을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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