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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 목표를 회피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는 1987년 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에게는 흰곰을 생각하라고 하고, B그룹에게는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흰곰이 떠오를 때마다 종을 치도록 했다. 종을 친 횟수가 많은 그룹은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B그룹이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욕구를 억누르려하면 할수록 그것이 더 나타나는 효과를 ‘역설적 과정 이론 Ironic process theory’ 이라고 한다. 백곰효과로도 불리는 이 이론은 헤어진 연인은 잊어야겠다고 마음먹어도 잘 되지 않는 이유, 실패를 극복해야겠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상황,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날리겠다고 하는 시도에 번번이 실패하는 경험을 설명한다.

이런 특정한 것을 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회피 목표’는 안타깝게도 우리의 힘으로는 쉽게 극복이 어렵다. 인간은 의식하는 것이 더 잘 새겨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강력한 메커니즘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눈을 감고 1분간 사과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라는 목표는 사과를 가장 선명하게 의식에 떠올리게 하며 우리를 단 몇 초만에 목표달성에서 멀어지게 한다.

하지만 회피 목표를 극복하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접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에서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실험은 이것을 보여준다. 해당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흰 옷과 검은 옷을 입은 팀의 농구경기를 1분간 보여주고 흰 옷팀의 패스 횟수만 세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경기 중에는 고릴라 옷을 입은 여학생이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그런데 무려 9초동안 중앙을 장악한 이 고릴라를 본 사람은 참가자의 절반에 불과했다. ‘패스 횟수를 세는’목표가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건강을 위해 ‘금연’을 결심하지만 실제로 의지의 힘으로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3~7%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연보조제를 사용하자’는 목표로 유도한 사람은 최대 25%까지의 성공률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헤어진 이성친구에게 전화하지 않기보다 새로운 만남을 추천하는 이유,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기보다 미래의 도전에 집중하길 권하는 이유이다. 흘러간 과거는 변하지 않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미래로 가지 못하도록 잡는다.

어릴때부터 날카롭고 예민하던 나는 몇 년전 명상을 시작하고 삶이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명상을 하는 것을 주변에서 알게되자 많은 분들이 잡념을 어떻게 지우는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흘려보내거나 다른 곳(보통 호흡 등의 아주 간단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것은 세계적인 명상가나 30년 수련한 이도 동일하다.

삶에서 나는 생각지 않은 결과가 정말이지 일어나는 경험을 쉴 새 없이 했다. 나름 잘한다고 내렸던 아쉬운 의사결정은 일파 만파로 상황을 바꿨고, 때론 자존감도 떨어지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원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제 극복해야겠다’고 마음먹어서 극복된적은 없었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도 자책과 과거는 여전히 마음 가운데 돌처럼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한 발 짝 내딛고 몇 걸음 간 후에 뒤돌아보면 어느새 과거는 지난날이 되어있었다. 건강이나 마음의 평화 뿐 아니라 사업도 동일했다. 어제의 나에게서 멀어지려 할 수록 이불킥만 불렀지만, 내일의 참된 나에게 다가가면 과거의 나는 배움이 되었다.

누군가 매번 학업, 사업, 수상 등 과거의 성취나 기억만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과거의 자신과 살고 있다.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여행, 운동, 산책 등 작더라도 ‘접근 목표’로 조금씩 나아간다면 삶은 나를 저절로 미래로 이끌게 된다. ‘회피 목표’를 회피할 때 가고 싶은 삶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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