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가장 빠른 유명세를 누렸던것은 문어 파울이었다. 녀석은 예언정확도 90%를 기록했으며, 2008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부터 결승 결과까지 모두 맞히는 신기를 기록했다. 전 경기를 연속으로 맞힐 확률은 약 1/2000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런데 사실 동물로 점을 보는 행위는 원시시대부터 인류의 기복 시도로 인해 계속된 것이었으며, 엄청난 몸값의 대상이 된 파울 이외에도 수많은 뱀, 이구아나, 햄스터 등이 경기마다 예언을 기록하고 다음 경기에서도 맞으면 결과를 공개하는등 전문 동물 도박 사육사들에 의해 길러지고 있다. 파울은 그 수많은 설계 대상 중 성공사례인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많은 세일즈맨은 소위 ‘형님아우’ 방식으로 큰 재미를 보았다. 이에 따라 특정 세일즈맨이 이적하면 고객들을 전부 데려가는 이른바 ‘물갈이’도 이루어졌다. 암웨이나 애터미 등 세일즈 의존도가 높은 다단계 판매회사들은 그래서 최상위 세일즈맨을 아예 등급으로 관리하며 중요하게 대우한다.
하지만 시스코나 세일즈포스 등 선진국의 다국적 회사들은 오래전부터 주력 세일즈 방식을 퍼널 형태의 관리 방식으로 설계했다. 그것은 고객의 유입단계를 깔대기 모양으로 고려해서 각 단계별로 잠재 고객 – 1차 미팅 – 관심 고객 – 체험 고객 – 계약 고객 등으로 나누고 역시 단계별로 유효한 시도를 기록하고, 관리하며, 축적하는 방식이었다.
코로나 시기가 도래하자 이들도 기존의 큰 오프라인 컨퍼런스나 관계 기반의 영업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웨비나를 확장하고 CRM(고객관계관리)을 고도화 하는 등 체질을 개선하며 더욱 가파른 실적을 기록하게 된다.
온라인으로 유입되는 고객을 각 단계별로 기록하고, 다음 단계의 전환율을 체크하며, 어떤 실험이 가장 유의미했는지 솎아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결과 불과 2년만에 이들은 매우 높은 국내 점유율을 기록하게 된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시도 끝에 이루어진다. 결과는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될때 높은 가능성으로 현실화된다. 많은 사람들은 상황이 닥치면 그때 그때 스스로 내리는 한 번의 선택이 최선이기를 기대하지만 그것은 가뭄이 오면 비가 올때까지 그저 기도만 하는 기우제에 가깝다. 그 경우 언제까지 기우제를 해야할 지 전혀 알 수 없다. 측우기를 설치하고 강우량을 관찰하며 예측할때 기우제의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동화 ‘햇님과 바람’에서 이야기하듯이 강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나그네의 코트를 강풍으로 날리겠다)보다 저절로 결과가 이루어지도록 설계(기온을 높여 코트를 벗고 싶게 만들겠다)하는 것이 가능성을 높인다. 문어의 팔을 비틀어서 정확한 승부예측을 해내기는 어렵지만, 수백마리의 후보 동물을 길러내며 성공하는 케이스를 육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결정자가 아닌 결정설계자가 될 때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한 발 다가온다.